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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그릇 스토리에서 이어짐)

 

 

# 로체스트 로나운 성채

 

(예언자 놀엔의 은신처.)

 

(희미한 향냄새와 함께 기이한 유물들로 가득 찬 방 안. 놀엔은 명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선 누군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녀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놀엔 : …돌아왔는가, 드라우의 모르간트여.

 

모르간트 : …….

 

놀엔 : 결과는 어떻지? 운명을 거스르는 자는 제거되었는가? 아홉 번째 반지는 회수했고?

 

모르간트 : …실패했다. 플레이어 그자는 예상보다 강했고 동료들의 방해도 거셌다.

반지는커녕 그의 의지만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을 뿐.

 

놀엔 : 실패라… 그대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혹시 사명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던 건가?

 

모르간트 : 의지가 부족하다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군.

분명한 건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나는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놀엔 : 그 말은… 마신의 뜻을 거역하려 드는 건가……?

 

모르간트 : 예언자. 착각하지 마라. 고요의 기사단은 그대의 하수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신의 뜻을 받들 뿐이다.

예언자가 올곧게 마신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진실을 찾아야 하겠지.

 

놀엔 : 후후후… 여전히 다루기 힘든 존재로군, 모르간트. 그 오만함이 언젠가는 그대를 삼킬 것이다.

 

모르간트 : …….

 

(모르간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놀엔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

 

(그가 사라지고 잠시 후 방 안의 어두운 커튼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 : 이게 그 반지로군. 네가 말한 신의 힘이 깃든 물건인가.

 

놀엔 : …….

 

? : 묻겠다. 예언자여. 이것으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나?

 

(놀엔은 흠칫하며 그 질문의 진의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표정이 없는 무채색의 얼굴에는 그 무엇도 드러나지 않았다.)

 

놀엔 : …….

그건 조차 불가능하다.

 

? : 그 말인즉슨…….

에녹 : …보다 위대해질 수도 있다는 거로군.

 

놀엔 :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마법사여.

 

(에녹은 생각에 잠긴 듯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

…….

 

(타라타 왕성.)

 

(카사르 성채에서의 긴박했던 여정을 마친 플레이어 일행이 마침내 타라타 왕성에 복귀했다.)

(회의실에서는 루더렉과 아하센 영주를 비롯한 참모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황 지도를 보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플레이어 일행이 들어서자 모든 이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루더렉은 밀레드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은 채 예를 갖췄다.)

 

루더렉 : 무사히 복귀하셔서 다행입니다, 폐하.

 

밀레드 : 모두가 노력해 준 덕분입니다. 총사령관. 왕성에는 별일이 없었습니까?

 

루더렉 : 대성당에 뿌리내린 가짜 여신 세력을 예의 주시 중입니다.

동맹군의 척후가 사라진 노스폴 잔당에 대한 조사를 수행 중이니 곧 기별이 올 것입니다.

아, 그리고 사도 클레르가 의식을 찾았습니다. 거둥이 불편하긴 하지만 의식은 또렷이 돌아온 듯합니다.

 

(루더렉의 보고에 밀레드는 화색을 띠었다.)

 

밀레드 : 플레이어. 난 잠시 그녀에게 가볼게. 총사령관에게 보고를 부탁해.

 

(밀레드는 사람들 틈으로 모습을 감췄다.)

 

루더렉 : 플레이어. 이번 원정에서 수확이 있었나?

 

[보고한다.]

 

(키홀과 모리안에게 전해 들은 강림의 단서.)

(그 추적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스피노스의 죽음과 지혜의 우물에서 모르간트의 습격에 이르기까지.)

(플레이어는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전했다.)

 

루더렉 : 고요의 기사단이라, 그런 일이 있었군…….

플레이어. 당신과 호각으로 겨루는 상대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군. 그리고 결국 찾아낸 것이 그 책인가?

 

브린 : 그렇습니다. 스피노스가 남긴 책입니다.

알 수 없는 문자로 기록되어 있어 아직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강림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르간트가 그토록 방해했던 것을 보면 이 책이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물건임이 틀림없습니다.

 

루더렉 : …알겠네.

브린, 자네에게 왕성 서고의 모든 자료 접근 권한과 함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 주겠네.

부디 좋은 소식을 가져오게. 이 책이 우리에게 활로를 열어줄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르니.

 

브린 : 학자로서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해독해 내겠습니다.

 

(브린은 뒤돌아서 리엘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브린 : 스승님, 뭐 하고 계십니까? 가시죠.

 

리엘 : 난 왜 또 끌어들여?

 

브린 : 저 혼자서 이 많은 양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군소리 말고 가시죠.

플레이어. 무슨 일이 있으면 서고로 찾아오십시오.

 

[알았다.]

 

(브린과 리엘의 대화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다.)

(루더렉은 긴 여정을 마치고 복귀한 일행들에게 휴식을 갖도록 권하였다. 모처럼 맞이하는 휴식이었다.)

 

…….

…….

 

(타라타 왕성.)

 

(밀레드의 발걸음은 복도를 지나 클레르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밀레드 : …….

 

(문 앞을 지키던 시녀가 조용히 문을 열어주자 침상에 등을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클레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몸 곳곳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의식은 또렷해 보였다.)

 

레무 : …….

 

(밀레드의 곁에는 작은 그림자처럼 레무가 조용히 따라붙고 있었다.)

 

밀레드 : 클레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 몸은 좀 괜찮아?

 

클레르 : 폐하, 원정에서 복귀하셨군요. 여기까진 어쩐 일로…….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으실 텐데.

 

밀레드 : 그 어떤 일도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아.

…클레르. 당신의 초인적인 의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마하의 지배술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클레르 :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 몸이 멋대로 움직였을 뿐.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본능 같은 것이었겠지요. 폐하께서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클레르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창밖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회복의 기쁨보다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혼란이 더 짙게 서려 있었다.)

 

클레르 : …폐하. 혹시 로엔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밀레드 : 로엔나……?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이야. 혹시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야?

 

클레르 : …모르겠습니다. 제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꿈속에서 들었던 이름입니다.

왕가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폐하께 여쭤봤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아직 혼란스러운 모양입니다. 잊어주십시오.

 

밀레드 :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줘.

 

클레르 : …옆에 소녀는  베르베의…… 레무. 맞습니까?

 

레무 : …….

 

밀레드 : 맞아.

 

(밀레드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클레르 : 그런 일이… 있었군요. 보탬이 보지 못하고 이렇게 병상에 있는 제 처지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밀레드 : …우리 모두가 함께 바로잡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클레르 당신의 힘도 필요할 거야.

지금은 무리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해 줘.

레무, 잠시 클레르의 곁에서 간병을 해줄래?

 

레무 : 응. 밀레드가 원한다면…….

클레르 님. 잘 부탁드려요.

 

클레르 : 고맙습니다. 레무.

 

레무 : …….

 

(레무는 생글거리며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잠시 차가운 적개심이 스쳐 지나갔다.)

(클레르를 향한 그녀의 시선은 날카로운 얼음 파편과도 같았다.)

(마키나를 죽게 만든 여자. 그 상처 입은 모습조차 가증스럽다고 레무는 생각했다.)

(소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지만 작은 주먹은 자신도 모르게 꽉 쥐어져 있었다.)

(밀레드와 클레르는 이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어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

 

(타라타 왕성 성곽.)

 

(치열했던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밤.)

 

메르 : …….

 

(플레이어와 메르는 성벽 위에 서서 멀리 보이는 타라타 도심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들은 말없이 반대편에 우뚝 솟은 대성당을 비추는 불꽃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그때 익숙한 발소리와 함께 마렉과 케아라가 다가왔다.)

 

마렉 : 여어, 플레이어. 메르. 복귀했다는 소식 들었어. 마침 여기서 만나네. 아, 우리는 순찰 중이야.

 

(함께 순찰 중이던 케아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케아라 : 마렉 좀 말려 봐. 단장이 자꾸 이렇게 나서면 단원들이 곤란하단 말이야.

 

마렉 : 난 칼브람 용병단의 일원일 뿐이래도. 단장이란 직책에 너무 연연할 필요 없어.

아마 아이단 단장님이 계셨더라도 별말씀 안 하셨을 거야.

 

케아라 : …….

 

마렉 : 아하하, 미안. 갑자기 단장님 이야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무겁게 했네.

 

케아라 : 아니. 그게 마렉의 장점이니까. 그렇지? 플레이어?

 

[맞다.]

 

마렉 : 동맹군의 영웅이 그런 말을 해주니, 영광인걸?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콜헨을 떠나 타라타 땅을 밟고 있다니……. 난 아직도 믿기질 않아.

그리고 분명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 믿어. 지금은 이렇게 순찰하는 것뿐이지만.

 

메르 : 오랜만에 두 사람을 보니 좋네. 칼브람 용병단의 든든한 모습은 여전하구나.

 

케아라 : 우리 용병단은 언제나 활기차지. 비록… 지금은 많은 게 변했지만.

다시 만난 플레이어도 있고 이렇게 메르 같은 신참도 생겼으니까. 플레이어, 메르. 바쁘다고 우리 잊으면 안 돼.

 

메르 : …그래, 사람은… 장소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지.

그리고 때로는… 잊는 것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잊지 않아야만 지킬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야.

 

(마렉과 케아라는 지나가는 조언 정도로 생각했지만 플레이어는 메르의 눈빛에서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웅의 길에서 좌절해 스스로 날개를 꺾고 기억을 봉인했던 마나난.)

(그로 인해 영웅들이 지금의 비극적 운명에 휘말리고 말았다고 자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케아라 : 고마워. 메르. 아이단 단장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셨으니까.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마렉 : 그래, 단장님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 돼. 반드시 승리하자.

아, 플레이어. 가끔은 용병단 막사에도 놀러 와. 다들 네가 오면 기뻐할 거야.

 

(마렉은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내려는 듯 플레이어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순찰을 위해 자리를 뜨려던 찰나 휘청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경계 태세를 갖춘다.)

 

마렉 : 누구냐!

 

(마렉은 칼을 뽑아 들고는 앞장서서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흠칫 놀란다.)

 

마렉 : 너, 너는…….

 

케아라 : ……!

 

시에테 : 후, 플레이어. 돌아왔군. 환영 인사라도 해야겠지만 내가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말이야…….

날 좀 부축해 줄래?

 

(시에테는 한눈에 봐도 격렬한 전투를 벌인 듯 피투성이의 몰골이었다.)

 

[부축한다.]

 

메르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이 정도로 다치다니……?

 

시에테 : …어떻게 된 거냐고……? 후, 나도 잘 모르겠어. 우선 루더렉에게 가자. 두 번 말할 힘이 없거든.

 

(진심이 섞인 농담으로 받아친 시에테는 플레이어의 부축을 받은 채 회의실로 향했다.)

 

…….

 

(타라타 왕성 회의실.)

 

(왕성 회의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부상이 심한 시에테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보고를 시작한다.)

 

루더렉 : …시에테, 상처가 심하군. 보고는 치료 후로 미뤄도…….

 

시에테 : 그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야, 총사령관.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선…….

 

세르하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시에테 : …총사령관의 명으로 실종된 노스폴 군대의 행적을 쫓았어.

그들의 흔적은 대성당 지하 연구실로 이어져 있었지.

그곳에선 노스폴의 포로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생체 실험이 벌어지고 있었어.

 

(시에테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바락스 : 허어. 그런…….

 

메르 : 설마 또 게아스를……?

 

시에테 : …그 설마가 맞아. 대부분의 포로는 실험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이웨카 군단과 전투에 투입되어 버렸어.

노스폴의 잔당을 이끌던 루시안을 비롯한 실험체 일부만이 살아남았지. 그들은 대성당 지하 감옥에 구속되어 있더군.

 

세르하 : …….

 

바락스 : 자네 상처는 어떻게 된 건가? 설마 그 루시안에게 공격을 받은 건가?

 

시에테 : 아니. 이 상처는……. 트레저헌터에게 입은 거야.

 

(익숙한 트레저헌터라는 단어에 밀레드가 흠칫하고 놀란다.)

 

밀레드 : 트레저헌터라고?

 

시에테 : 그래, 솔레어라는 이름의 여자였어.

 

밀레드 : 솔레어? 솔레어가 어째서……?

 

시에테 : 그녀의 의뢰인이 다름 아닌 에녹인 것 같아.

 

밀레드 : 에녹, 그자가……!

 

키안 : …모르반에서 솔레어와 에녹이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우연은 아닌 듯하군요. 어쩌면 마하의 지배술에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케아라 : …….

 

(마하의 지배술이라는 말에 케아라는 흠칫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시에테 : 키안. 당신 말대로 그녀 역시 게아스를 주입한 상태였어.

개량된 게아스를 적정량 투여한 탓에 마족화까진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힘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지.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브린 : 놈들의 게아스를 다루는 솜씨가 점점 발전하고 있군요. 이대로라면 타라타 도심의 시민들도 위험합니다.

 

메르 : 브린, 고서 해독은 끝난 거야?

 

브린 : 그렇게 빨리 마칠 수 있었다면 그 무거운 책을 들고 오지도 않았겠죠. 잠시 스승님께 맡겨두었습니다.

 

(브린과 메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루더렉은 시에테에게 휴식을 지시한다.)

 

루더렉 : 시에테. 네게 맡긴 임무는 노스폴 군의 행방을 쫓는 것이었고 충분히 완수했다.

이제 상처를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라.

 

시에테 : 후… 이제 어쩔 셈이지? 그들을 구할 거야?

한차례 잠입이 발각된 상황이라 적들의 방비가 더욱 강해져 있을 거야.

 

루더렉 : 흠…….

 

(루더렉이 깊은 고민에 빠지자 아하센 영주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조언을 건넸다.)

 

아하센 영주 : …고민할 문제가 아니네.

노스폴의 포로들이 딱하긴 하나 그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 병사들을 또다시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네.

그들은 우리에게 칼을 겨눴던 적군이었네. 총사령관.

 

루더렉 : 영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또한 시에테의 보고대로 방비가 강해진 상황에 구출 작전은 너무나도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군의 사기와 보급 상황으로는 전면전을 앞두고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밀레드 : …그들은 왕명에 따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군인입니다.

그들이 동맹군과 맞댄 창칼에 죄가 있다면 제게도 그 책임을 물으십시오.

 

(모두의 시선이 밀레드에게 쏠렸다. 그의 눈빛에는 이전의 유약함 대신 차갑지만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아하센 영주 : 폐하. 저희가 어찌 감히…….

 

밀레드 : 로메르 영주도, 루시안 부관도, 노스폴의 병사들도… 모두 마하와 에녹의 기만에 놀아난 저와 같은 피해자입니다. 지금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법황청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버려진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누구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것입니다.

 

루더렉 : …폐하. 하지만 명분실리는 다른 문제입니다.

 

밀레드 : 이것은 왕명입니다, 총사령관. 명분은 내가 세우겠습니다. 실리는 그대와 플레이어의 몫으로 넘기지요.

우리의 명분은 단순히 노스폴의 생존자를 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가 과거의 원한과 비겁함이 아닌 연대와 용서 위에 세워질 것임을 증명하는 첫걸음입니다.

루시안을 구출하십시오.

 

(밀레드의 단호한 명령에 루더렉은 잠시 놀란 듯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빛에서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무게와 고결한 결의를 읽고는 예를 갖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루더렉 : …폐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아하센 영주 : …….

 

루더렉 : 바락스, 부상자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소집령을 전달하게.

 

바락스 : 네, 총사령관.

 

(바락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뒤 전투 준비를 위해 회의실을 나섰다.)

(고요했던 회의실에 천천히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루더렉 : 플레이어. 오늘 밤 자정. 본군이 대성당 정문을 총공격하여 적들의 시선을 최대한 끌다.

그 사이이 자네는 별동대를 이끌고 법황청 지하 내부로 잠입, 노스폴의 포로들을 구출해 주게.

 

[알았다.]

 

루더렉 : 대성당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야심한 시간이긴 하나 무고한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통제가 필요하지.

마렉 단장, 칼브람 용병단이 그 임무를 맡아주겠나?

 

마렉 :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비록 선봉이 아닌 지원 임무였지만 마렉은 평소처럼 불만을 토로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눈빛이었다.)

 

루더렉 : 플레이어, 명심하게. 늦어도 새벽, 동이 트기 전까지는 본군과 합류해야 하네.

그 이상 시간이 지체된다면…….

 

브린 : 이 구출 작전은 실패로 봐야겠죠.

만일 약속된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한다면 본군은 미련 없이 퇴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메르 : …브린…….

 

루더렉 : 알겠네. 그러지 않길 바라겠네. 그럼 채비해 주게.

 

밀레드 : 대성당의 미로 같은 시설에서 작전을 수행하려면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키안 : 잘 아는 사람이라면…… 설마…….

 

밀레드 : 나 역시 별동대와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본군의 지휘를 부탁합니다. 총사령관.

 

아하센 영주 : 폐하, 직접 별동대와 움직이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밀레드 : 알고 있습니다. 위험한 일이니 더욱 내가 나서야 합니다. 위험하지 않은 전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조금 전 우리는 명분과 실리를 논했지요. 이것이 바로 내가 세울 명분입니다.

동맹군의 결속을 다지고, 주저하고 있는 세력들을 흡수하기 위한 명분 말입니다.

 

아하센 영주 : …….

 

밀레드 : 나는 지금 경들에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내 뜻을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밀레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위엄이 서려 있었다.)

 

루더렉 :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루더렉과 아하센 영주는 왕의 결단을 따르며 예를 갖추었다.)

 

 

(스토리 왕의 결단 완료)

(희망을 삼키는 절망 스토리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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