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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치 3,540,000

: 골드 57,000


 

(어느 간증 스토리에서 이어짐)

 

 

# 로체스트 로나운 성채

 

…….

…….

 

리엘 : …아이고. 이제는 못 찾겠다. 늙은이가 발이 왜 이렇게 빨라.

…….

그나저나 슬슬 우리 친구들이 돌아올 때가 됐는데….

 

(그때 숲길 저편으로부터 일행이 다급히 달려왔다.)

 

밀레드 : …리, 리엘 님…!!!

 

브린 : …헉…, 헉….

 

리엘 : 헤헤, 드디어 왔구나! 역시 이리로 돌아올 줄 알았다니깐.

잘 다녀왔어? 도시 나들이는 재밌었고?

 

밀레드 : …음. 그러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리엘 : …오호라. 우리 친구들과 제자가 보기 좋게 한 방씩 먹어 버렸구나.

사람들이 납치된 마당이라 한시가 급한 상황이고. 그렇지?

 

브린 : …예. 타메인 주교 대행의 말에 따르면 에녹의 실험실은 이 숲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전에는 땅속에 입구가 파묻혀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떨는지 모르겠군요.

벌써 날이 많이 저물었습니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입구부터 찾아보도록 하죠.

 

리엘 : 히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다 찾아놨거든! 그게 너희가 찾는 그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히히.

 

브린 : 예…?

 

밀레드 : 그게 정말이세요, 리엘 님…?

 

리엘 : 응. 응. 정말이야. 저기 숲 안에 이따만한 연막을 쳐뒀다니까?

뭘 숨겨둔 건지 모르겠지만 나무로는 못 가릴 만큼 큰 건 가봐.

 

밀레드 : …! 그럼 더 지체할 필요 없겠군요…!

 

브린 : 잠깐 기다리십시오, 밀레드. 스승님 얘기 중에 묘하게 거슬리는 게 하나 있어서요.

역시 이리로 돌아올 줄 알았다니요? 저희와 따로 행동하기도 전부터 여기에 수상한 게 있다는 사실을 아셨던 겁니까?

 

리엘 : 히히히. 그건…. 안 알려 주지!

 

브린 : …….

…….

…앞으로도 계속 말을 쓸데없이 아끼는 늙은이 역을 이어가실 셈이군요?

 

리엘 : 그래, 그렇단다. 너희 젊은이들의 운명을 위해선 그게 내 최선의 역할이거든.

앞으로도 난 지금처럼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할 거야. 하지만 너무너무 급해 보이면 쬐끔씩 도와는 줄게.

 

브린 : …예, 예. 스승님이 뒷짐 지고 계신 동안 젊은이들끼리 열심히 발로 뛰어보죠.

 

밀레드 : …그러고 보니 스피노스 님은 어디 계신가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으셨나요?

 

리엘 : 그래. 어딜 그렇게 나돌아다니는지 당최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더라고.

하여간 옛날부터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친구야, 정말.

 

스피노스 : …그건 자기 자신을 말하는 건가. 리엘.

 

밀레드 : 스피노스 님! 돌아오셨군요!

 

브린 : 자기 얘기가 나올 때 딱 나타나시는군요. 역시나 양반은 못되시나 봅니다.

 

리엘 :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이 붕대 양반아. 한참을 찾아다녔잖아.

 

스피노스 : …….

에녹을 만났다.

 

리엘 : 엥?

 

밀레드 : …!

 

브린 : …뭐라고요…?!

 

스피노스 : 내게 정신을 지배하는 잡풀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났더군.

 

브린 : 잡풀…. 설마 게아스를 말하는 겁니까…!!! 놈이 우리 내부에서 벌어진 갈등을 눈치채고 이용하려 들었군요….

…스피노스, 당신. 이걸로 자신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요?

 

스피노스 : …날 너무 무시하는군.

하긴, 그도 똑같이 생각했다. 내가 얕은 수작에 넘어가 자기 의도대로 움직일 거라고 확신한 모양이더군.

허나 보다시피 난 아무렇지도 않다. 잡풀도 놈에게 고스란히 돌려줬지.

 

브린 : …그거 다행이군요.

아까는 난데없이 벌컥 화를 내시길래 사리 분별이란 걸 하시는 분인지 염려스럽던 참이었거든요.

 

밀레드 : …브린!

난 이제 괜찮아. 정말이야. 그러니 싸움은 그만하자.

 

리엘 : 그래. 우리 소년 왕 말대로 하자. 진짜 한 방 먹여줘야 할 친구는 따로 있잖니.

내가 앞장설 테니 어서들 따라와!

 

스피노스 : …….

 

브린 : …….

…….

 

…….

….

 

(리엘의 걸음이 멈춘 곳은 어느 안개가 자욱한 수풀이었다.)

(평범한 이라면 겁을 먹고 도망갈 만한 스산한 광경기 넓은 일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

 

리엘 : 자,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그냥 보기엔 평범한 안개 같겠지만 사실은 이 전체가 거대한 역장이거든.

 

밀레드 : 역장이요…?

 

리엘 : 에헴, 설명해 주렴. 제자야

 

브린 : 이건 역장. 즉 일종의 마법 방어막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시야를 차단하는 용도로 쓰이지요.

지금 같은 경우엔 안개 같은 자연 현상인 척 교묘하게 꾸며서 연막을 쳐둔 걸로 볼 수 있겠고요.

 

밀레드 : …확실히 이 정도 규모라면 주교 대행이 말한 오래된 성당 하나쯤은 거뜬히 감춰두었겠어.

 

리엘 : 그렇지, 그렇지.

 

브린 : …음. 이런 안개 형태의 역장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에녹]

 

브린 : …….

…예, 기억났습니다. 로체스트 대성당에서 당시 클레르 인퀴지터, 메르와 함께 타메인 주교 대행을 구하던 때.

이 역장은 그때 에녹이 펼쳤던 역장과 매우 흡사합니다. 과연, 이 안에 숨어있는 게 누구인지 자명해지는군요.

…음. 역장을 걷어낼 수 있는지 한번 보죠.

 

(브린은 낮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잠시 걷히는가 싶던 안개는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브린 : 로체스트 때와 똑같은 대처법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군요.

스승님은 어떻습니까. 이 정도 마법은 눈 감고도 푸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리엘 : 예끼. 이 녀석. 긴 세월 동안 계속 유지되어 오던 강력한 마법을 어떻게 단숨에 싹 풀어내?!

아무리 나라도 모든 걸 뚝딱해낼 순 없어.

 

브린 : 흥. 위대한 로센리엔이라면 당연히 하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

 

(브린은 안개 너머를 주시했다.)

 

브린 : …안개 너머에 무언가 초록빛이 어른거립니다….

 

(브린이 안개에 다가서려 한 발짝 움직이려 하자 스피노스가 급히 제지했다.)

 

브린 : …뭐 하는 짓입니까.

 

스피노스 : 그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주변에 널린 소동물의 사체가 안 보이나?

아무래도 일대에 치명적인 맹독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살점에 핏기가 있는 걸 보니 퍼진지는 그렇게 오래 안 됐군.

 

브린 : …!

 

(주위를 둘러보자 스피노스의 말대로 안개 부근에 크고 작은 생물의 사체가 흩어져 있었다.)

 

밀레드 : …독이라니…. 안돼…. 인질로 잡혀간 사람들마저 독에 노출되었다면….

 

브린 : 인질은 살아있어야만 가치가 있습니다. 어림짐작이긴 하나 당장은 무사할 거예요.

 

리엘 : 흠. 내가 역장을 찾아냈을 땐 맹독 같은 건 없었는데 그 사이에 뭔가 변했나?

 

스피노스 : 저 안개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계속 독을 내뿜고 있는 모양이다.

보아하니…. 아마도 맹독을 품고 있는 생물이 있는 듯하고. 이를테면 전갈 같은 것 말이다.

 

브린 : 전갈이라고요…? 젠장…. 저 안에 타라탄 같은 게 하나 더 있나 보군요.

그런데…. 어떻게 바로 전갈을 특정했죠? 독을 품은 생물은 수백 가지일 텐데요.

 

리엘 : 제자야. 저래 봬도 스피노스는 한 나라를 책임지는 치유사였어. 온갖 독이란 독은 다 한 번씩 핥아봤을걸.

 

스피노스 : …안 핥아본 독이 더 많지만 독의 종류와 예후 정도는 알고 있지.

독이 체내에 들어가면 살이 어떻게 썩어가는지도 말이다.

 

브린 : …그 사이에 근처 시신의 상태를 파악했다는 겁니까. 빠르군요.

 

리엘 : 히히. 더 굉장한 것도 할 수 있잖아. 스피노스.

엄청 옛날에 스피노스는 독에 당한 우리 루를 독으로 치료해 준 것도 있다고.

 

밀레드 : 독을 독으로요…?!

 

스피노스 : 그래, 성분에 따라선 독이 뛰어난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맹독도 마찬가지지.

약간의 여유를 준다면 간이 해독제 정도는 제조해 주겠다.

 

브린 : 마땅한 도구도 없는 이런 환경에서 갑자기 해독제를 만들겠다고요…?

 

스피노스 : 모래사막 위에서 거북이 등껍질에 대고 약을 짓는 것보단 훨씬 나은 환경 아닌가.

거친 환경에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군, 리엘의 제자.

 

브린 : …….

…흥. 잘난 척하기는. 포션 제조에 필요한 간이 도구라면 동맹군을 나설 때 챙겨왔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거북이 등껍질 대신 세련된 도구에 익숙해지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스피노스?

 

스피노스 : …….

…….

 

리엘 : 가만 보면 둘이 사이가 참 좋단 말이야. 히히.

 

(스피노스는 말없이 브린의 도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독을 적당히 채취한 뒤 자리를 잡고 해독제 제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

 

스피노스 : …….

완성했다.

 

(스피노스는 푸르스름한 액체가 담긴 병 여러 개를 내밀었다.)

 

밀레드 : 해독제군요…! 굉장하세요…!

 

브린 :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한 병도 아니고 여러 병씩이나…. 괜히 영웅의 신관은 아니었나 봅니다….

 

리엘 : 흠흠. 제자야. 친구들아. 영웅의 마법사인 나도 두 숟갈 정도 보탰어.

간이 해독제지만 효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특별한 마법을 걸어놓았거든.

이름하여 정화의 성수. 성수를 뿌려 무언갈 정화하고 나면 그 효과로 잠시간 몸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단다.

안갯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게 전갈이든 아니면 해로운 마법이든 간에 유용하게 쓰일 게야.

어때, 친구야? 엄청나게 멋지지? 응?

 

[멋지다.]

 

리엘 : 히히히. 신난다, 신나. 늙었어도 여전히 칭찬 듣는 건 기분이 좋아.

그럼 이제 안갯속으로 들어가 보자꾸나. 어서 역장을 푸는 주문을 외우거라, 제자야. 내가 도와주마.

우리 둘이 주문으로 역장을 걷는 동안 스피노스와 친구들이 해독하며 안으로 진입하는 게야.

다들 준비해!

 

(리엘과 브린이 주문을 외우자 장막처럼 덮여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이어 일행은 정화의 성수를 몸 위에 뿌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

 

(걷혀든 안개 사이로 얼마간 걷자 지하로 이어진 문이 나왔다.)

 

스피노스 : 내부로 진입하니 독의 농도가 확연히 옅어졌군. 이 정도 독은 신체에 별 영향이 없을 거다.

 

리엘 : …아휴, 잘 됐다. 그럼 성수를 뿌리는 건 이만 멈추자. 옷이 너무 축축해졌어.

 

브린 : …….

…이 통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생겼군요. 타메인 주교의 말마따나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밀레드 : 여기저기 초와 횃불을 밝혀놓은 걸 보니 드나든지 얼마 안 된 이용객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브린 : …잠깐. 저기 문 너머에 인기척이 있습니다.

 

밀레드 : …내가 잠시 보고 올게.

…! 근위 기사…. 히스나이츠가 있어…!

단순히 한 두 명 보초를 세운 게 아니라 길목을 막아서기 위해 제대로 호위를 붙인 것 같아.

이렇게 된 이상 충돌은 불가피하겠어.

 

브린 : 히스나이츠라. 여기에 누가 숨어 있는지 아예 대놓고 써 붙이는 격이군요.

보통은 호위가 철통같은 수록 안에선 그럴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던데….

부디 이번에는 이 예감이 틀리길 바랄 뿐입니다.

 

밀레드 : …응. 나도 정말 그러길 바라. 계속 가보자.

 

(히스나이트를 쓰러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다시 지상으로 길이 이어졌다.)

(사방을 가득 메운 불길한 징후를 떨쳐내며 일행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섰다.)

 

밀레드 : 여긴…. 성당으로 이어지는 복도야….

윽…. 공기에 악취가 섞여 있어…. 마치 사체가 부패한 듯한 끔찍한 냄새가….

 

스피노스 : 저 문틈에서 맹독이 새어 나오고 있군. 맹독의 근원도 아마 저 안쪽에 도사리고 있겠지.

 

브린 : …….

…!!! 보이십니까?! 문에 그려진 마법진…! 제가 역장 밖에서 보았던 불빛의 정체가 바로 저것이었습니다…!

마법진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걸 보아선 이미 저 안에서 마법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엘 : 흠…. 아주 특이한 문장이구나….

 

브린 : 아시는 게 있다면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스승님.

 

리엘 : 걱정일랑 말거라. 이런 상황에서까지 장난칠 생각은 없거든.

…….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말이다.

저게 고대의 마법을 재해석한 독특한 형태의 마법이라는 사실뿐이구나.

단순한 저주 마법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더 있는 건지…. 마법진을 해독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게야.

 

브린 : 스승님께서도 처음 보는 마법이라는 말씀이군요….

저희가 도심에서 마주했던 바로 그 광경처럼….

…어쩌면 저 마법이 우리가 타라타 도심에서 겪은 소동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어쩔 수 없군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늘 그래왔듯 적의 소굴로 뛰어들 수밖에 없겠습니다.

갑시다, 플레이어. 마하에게로 나아가기 위해선 에녹 그자가 어떤 수를 써놓았든 반드시 돌파해 내야만 합니다.

 

…….

….

 

스피노스 : …참으로 역겹기 짝이 없는 광경이군….

 

밀레드 : …저 오르간에 붙어있는 유기물과 알은 도대체….

 

브린 : 자기들만의 비밀 실험실에서 아주 신나게 실험들을 했나 봅니다….

제길…. 저 흉측한 걸 마주하고 나니 도무지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군요.

인질로 잡혀온 이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요….

 

리엘 : 기둥과 벽면에도 온통 문장이 새겨져 있구나. 이미 이 내부 공간 자체가 하나의 마법진화되어 있는 게야.

쭉 둘러보니 마법이 상당히 진행된 것 같은데….

제자야. 내가 마법진을 해독하는 동안 네가 친구들과 마법의 진행을 막거라.

당장 쬐금 본다고 해서 많은 걸 알아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상황을 낫게 만들 순 있을 거야.

 

브린 : …알겠습니다. 스승님.

플레이어, 밀레드. 우선은 이 안에 새겨진 문장들을 훼손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 : …마음대로 하게 둘 것 같나?

 

[!!!]

 

(흉하게 변조된 음성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부식한 파이프오르간 아래로 어렴풋한 인간의 실루엣이 보였다.)

 

브린 : …에녹…!!!

 

에녹 : …조금만 더 있으면 마법이 완성되려던 참이었는데 불청객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군.

 

밀레드 : 네가 도심에 타라탄을 풀어놓고 신도들을 납치해갔다는 걸 알고 있다! 당장 사람들을 풀어줘!

 

브린 : 혹여라도 또 마수를 풀어 우리를 공격할 셈이라면 포기해라!

네가 만들어낸 허접한 마수 따위는 크로우 크루아흐의 성력에 대적한 플레이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에녹 : …….

…후후후. 나는 기억한다. 붉은 날개의 여신이 나를 구원하던 그날을…. 여신께서 내게 보여주신 아름다운 혼돈을….

그 혼돈을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브린 : 난데없이 두서없는 말을….

…잠깐. 저 작자 거동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딘가…. 정상적인 상태 같지가 않습니다….

 

[…!!!]

 

브린 : …플레이어! 갑자기 왜 그러는 겁니까?

 

[…마족화한 인간의 기척]

 

밀레드 : …마족화 한 인간이라고…?!

 

브린 : …지금 저자가 마족화했다고 말하는 겁니까…? 설마…. 그렇다면 지금 이 맹독을 내뿜고 있는 것도….

 

에녹 : …마법사라면 다들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나?

만일 자기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말이다.

…늘 궁금했었지. 나라는 인간은 여신의 축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어떤 형질과 색채를 지녔을지.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나를 대상으로 삼을 것을….

 

밀레드 : …그딴 언행으로 네놈의 악행에 의해 희생된 목숨을 모욕하지 마라!

매번 배후에서 일을 처리하던 네놈이 왜 갑자기 전면에 나선 거지? 그것도 마족화까지 해가면서…?

 

에녹 :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폐하. 네가 실패하면 내가 직접 플레이어를 죽이겠다고.

거룩하신 여신께서 내게 직접 영웅을 가로막고 네놈 때문에 틀어진 일을 바로잡으라 명하셨으니

나는 이에 순종할 뿐이다. 믿는 자에게 이 이상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한가?

 

밀레드 : 역겨운 광신도 놈…. 마하를 위해선 그 어떤 희생이든 다 감수하겠다는 거냐….

 

브린 : …마하 그리고 네놈으로 인해서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다.

여기 있는 밀레드를 비롯해 네놈의 실험 재료로 전락한 무고한 목숨들이….

그런데 너는 그 모든 죄를 고작 네 알량한 믿음 때문이라 말하는군. 네놈에겐 일말의 양심조차 없단 말이냐!

 

에녹 : …알량한 믿음이라. 너희의 믿음과 나의 믿음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사람은 각자의 믿음으로 행한다. 너희들은 영웅 그리고 영웅이 만들어갈 미래를 믿지.

그렇기에 기꺼이 수없이 많은 마족과 인간의 피를 봐오지 않았나.

개중엔 로메르처럼…. 단순히 완강하고 고지식하다는 이유로 죽은 무고한 늙은이의 피도 섞여 있지.

 

브린 : ……! 그는 마하가 준 건틀렛으로 인해….

 

에녹 : …후후후. 왜 굳이 내게 변명하지? 그 말을 통해 너희만은 나와 다르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나?

그럼 이건 어떤가? 네놈들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또 한 명의 남자.

아이단 단장의 피 말이다.

 

브린 : …뭐라고…? 네가 그걸 어떻게….

…….

…….

……….

……….

……….

…설마….

 

……….

…….

….

 

(무서운 정적이 숨통을 조여왔다. 새카만 그림자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방금 에녹의 말로서…. 아이단, 그의 죽음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분명해졌기에.)

 

에녹 : …….

가족을 끔찍이 사랑한 가장이었던 그가 같은 이유로 동지의 손에 죽었다.

속인의 관점으론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지. 그러나 나는 세속의 도덕으로 너희를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는 그만의 믿음을 행했고 너희는 너희의 믿음을 행했을 뿐이니.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여신께서 펼치실 미래를 믿는다.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기꺼이 피를 본다.

그녀가 열 미래는…. 기성의 옳고 그름, 미와 추의 관념이 사라지고…. 운명이 새롭게 정의되는 아름다운 혼돈의 세계.

그러니 내 모든 연구와 그 산물들은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위한…. 오직 여신 마하만을 위한 사역인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만의 잣대로 내 연구를 악행으로 평가하나 어차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다. 나의 추악한 실패작들도 여신의 눈에는 아름다웠듯이….

누군가에겐 내 여신이 열 새로운 세상이 너희가 꿈꾸는 허황된 세상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다….

 

밀레드 : …….

 

브린 : …….

…네놈…. …네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다….

 

[…에녹과 직접 말하겠다.]

 

브린 : …플레이어.

 

(브린을 진정시키고 에녹을 향해 나아가 그의 앞에 섰다.)

 

에녹 : …….

 

[네 말대로….]

 

네 말대로 나는 많은 피를 보았다.

그리고 훗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온다면 달게 받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피를 보는 걸 주저하지 않겠다.

…네 최후마저 아름다우리라곤 기대 마라.

 

(…그렇게 잿빛 사역자에게 전하고 무기를 고쳐 쥐었다.)

 

에녹 : …후후후. 운명에 휩쓸려 다니는 영웅이 이제야 강한 확신을 갖고 행동하는군.

그래, 그렇게 서로의 믿음을 겨뤄보자. 떠받들어진 영웅이여.

자, 오너라. 플레이어. 여신의 안에서 나는 완벽해졌다. 이 마법을 완성해 내 믿음과 헌신을 증명하겠다.

 

 

# '위대한 사역' 전투 진행 중

 

 

# '위대한 사역' 전투 완수 후

 

에녹 : …….

 

(널브러져 경련하는 에녹의 입에서 붉은 액체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집게로 바닥을 긁으며 애써 일어서려는 그의 집념 어린 모습을 일행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브린 : …….

…전갈이라…. 내내 사람들 사이에 독을 퍼트리고 다닌 그의 행보를 행각하면 참으로 어울리는 변이 아닙니까.

 

밀레드 : …….

…….

 

에녹 : …….

…여…, 여신님….

…나의….

 

밀레드 : …….

왜 그렇게 많은 이를 고통으로 몰고 간 거냐…. …고작 이런 최후를 맞을 거면서….

 

에녹 : …헉. 헉….

 

브린 : 이젠 포기해라. 에녹. 네가 숭배하던 여신은 널 미끼로 내던졌다.

그동안 네가 파멸로 이끌었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넌 마하로부터 버려진 거야.

광신도에게 있어 그것보다 괴로운 사실은 없겠지. 그 사실을 상기하며 조용히 최후를 맞이해라.

 

에녹 : …….

…여신께서…, 날 버렸다고…?

…….

…….

…….

…후후후.

…후후후. 후후후….

하하하하….

…착각에 빠진 꼴이 우습구나…. 내가 어떻게 죽느냐는…, 중요치 않다….

죽음 이후…. 여신의 세상 속에 내가 있는가…. 믿는 자에겐…,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것을….

 

브린 : 마지막까지 무의미한 소릴….

 

밀레드 : 이런 소리에 더 귀 기울일 필요 없어. 브린. 빨리 납치된 사람들을 찾으러 가자.

 

에녹 : …….

…후후….

…….

…없다…. …아무도 잡혀 오지 않았다….

 

밀레드 : ……!

 

브린 : …그게 무슨…!!!

 

(그러나 에녹은 아무런 말 없이 거친 숨만을 몰아쉬었다.)

 

에녹 : …….

…….

…마법이…, 완성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

…저는 당신에게로 돌아갑니다…. 나의 붉은 여신이여….

 

리엘 : 제자야…!!! 당장 저 녀석을 막아야 해, 어서…!!!

 

브린 : 스, 스승님…!!!

 

(그러나 일행이 미처 저지할 새도 없이 에녹은 영웅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

(피로 붉게 물든 에녹이 그대로 고꾸라지자 성당 안의 문장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면에서 올라오는 진동과 함께 마법진으로 모여든 초록색 빛이 붉게 물든 밤하늘 위로 세차게 솟구쳤다.)

 

브린 : …….

…저 표식은….

 

리엘 : …너무 늦게 알아채고 말았구나….

이건 시전자가 제물이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마법이었던 게야….

 

밀레드 : …아….

 

브린 : …….

그럼…. 여태껏 우릴 거짓 정보로 속이고….

아이단 단장을 들먹이며 증오를 부추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단 말입니까…!

우리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도록 유인하기 위해서…!

 

스피노스 : …….

 

(곧이어 붉은 하늘에 그려진 마법진에 모인 빛이 하늘로 넓게 퍼졌다.)

(그리고 왕성 방향을 향하여 긴 꼬리를 그리며 무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브린 : …제길…!!! 놈에게 놀아나다니…!

 

밀레드 : 마법이 왕성 쪽을 향해 갔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왕성으로 돌아야 해! 서둘러!!!

 

(일행은 재빨리 왕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브린 : …….

…제길…!

 

밀레드 : …….

…….

 

리엘 : …….

 

스피노스 : …….

…….

…….

 

스피노스 : …나는 이만 돌아갈 겁니다. 나의 신 빛의 인도자에게로요.
저열한 마무리 덕분에 그나마 있던 해후의 흥마저 다 깨어졌으니까요.
…….
…….
피차 다시는 볼 일이 없길 바랍니다.

에녹 : …….
…….
…기다려라, 스피노스. 가짜 영웅에게 돌아가면 그다음은 어쩔 셈이지?
이대로 타라타 대성당까지 동행할 생각인가? 이미 그곳에 네 팔라라가 없는걸 아는데도?

스피노스 : 내가 뭘 하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더는 참견 마십시오.

에녹 : 네가 무슨 말로 설득하든 그들은 진격을 멈추지 않겠지.
그러나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한시라도 빨리 네 신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네가 그들에게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또다시 공주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스피노스 : …닥치십시오!!! 또 날 조종하려 드는 겁니까!

에녹 : 아니. 나는 널 조종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네 상실감을 이해한다고 말하려는 거다. 우린 참으로 닮은 믿음을 지녔으니.

(에녹은 스피노스가 바닥에 내팽개친 초록색으로 빛나는 게아스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붕대가 감긴 스피노스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다.)

스피노스 : …….
…….

에녹 : 한 가지 부탁하지. 난 지금 여신 마하의 이름으로 죽으러 가는 길이다.
그러니 내가 옳은 때에 적절한 모습으로 죽을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길 부탁한다, 스피노스.
나의 죽음을 통해 네가 다시 팔라라에게 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겠다.

스피노스 : …그런 건 당신의 수하들에게 시키면 될 일 아닙니까.

에녹 : 그들은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네 친구 영감탱이나 가짜 영웅이 그러하듯 말이다.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 거다. 내가 네 상실감을 이해하듯 오직 너만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스피노스 : …….
당신에게 협조하면 빛의 인도자께선 해를 입으실 겁니다.

에녹 : 네 신 팔라라에게 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다. 오히려 팔라라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네가 더 빨리 그의 곁으로 돌아가 그의 안전을 지킬 테니 말이다.

스피노스 : …….
…….
…….
…….
…앞장서십시오.

…….
….


스피노스 : …….

에녹 : …….
마법 연구 기관장이 타메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했군. 곧 영웅 일행도 이리로 오겠지.
개체와 군중을 대상으로 한 인간 원격 지배술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자. 모든 준비가 끝나고 마지막 과정만이 남았군. 그 게아스를 내게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스피노스.

스피노스 : …당신의 여신은 이런 식으로 믿음을 시험합니까? 참 잔혹한 신입니다.

에녹 : 믿음 때문에 죽지도 못한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우습군.
…그런 거다. 우리의 믿음은.

스피노스 : …….

에녹 : …….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제 너는 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네 믿음을 증명할 텐가?

스피노스 : …!

에녹 : 태양의 공주의 죽음을 통해 너도 충분히 깨닫지 않았나.
가짜 영웅이 걷는 길엔 항상 구 시대 것의 죽음이 따른다는 것을….
영웅과 팔라라는 한 시대에 공존할 수 없다.
영웅이 살아있는 이상 네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그런데 너는 네 신이 죽어 없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눈물 흘리며 석상이나 끌어안을 건가? 그런 게 네 믿음인가?
네 신이 눈앞에 살아 헌신해있을 때 육신과 영혼을 다해 찬미하라.
네 신이 살아서 숨 쉬고 있을 때 있는 힘껏 네 믿음과 열의를 전하란 말이다.
믿지 않는 자들의 말에 결코 휘둘리지도 망설이지도 마라.
그 끝이 아무리 추할지라도 끝내 네 신은 널 기억할지니, 신이 그릴 세상 속에 영원히 네가 함께할 것이다.
…이것이 광신자 동지로서 내가 남기는 마지막 충고다.

스피노스 : …….
…….

에녹 :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 부탁한다. 스피노스.

(짧은 침묵 후. 이어 스피노스가 에녹의 입에 게아스를 밀어 넣자…. …서서히 변이가 시작되었다.)

에녹 : …….
…으, 으윽….
…….

스피노스 : …….
…….
…….
……….
……….
그 끝이 아무리 추할지라도 끝내 네 신은 널 기억할지니….

(뒤틀려가는 에녹의 모습을 스피노스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스토리 위대한 사역 완료)

(믿음이 남긴 것 스토리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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