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토리 보상

: 경험치 3,540,000

: 골드 57,000


 

(끝은 같지 않기를 스토리에서 이어짐)

 

 

# 로체스트 로나운 성채

 

밀레드 : 에이레 누나….

이세트….

…….

…미안해. 정말 미안해….

 

…….

…….

 

(…부스러져 빛나는 모래알 사이로 어느 기억이 엿보인다.)

(각각의 왕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어느 공주와 어느 왕자…. 둘의 삶이 교차하던 나날의 흘러간 이야기가….)

 

밀레드 : 저기, 누나. 여기서 뭐해요?

 

이세트 : 찾고 있는 게 있어. 계속 찾는 중이야.

 

밀레드 : 뭘 찾고 있는 거예요?

 

이세트 : …내 소중한 사람.

 

밀레드 : 저희 트레저헌터에요! 찾는덴 소질이 넘쳐요! 저기, 도와드릴까요?

 

이세트 : …….

새를 데리고 다니는 자가 와. 가야겠어.

 

밀레드 : 누나, 잠시만요! 누나…!!!

 

…….

…….

 

기사들 : 저기다! 왕자를 잡아!

마녀와 같이 있다, 방심하지 말아라!

 

에이레 : 아, 안돼…. 이 앞은 절벽이야….

하지만 밀레드를 지키기 위해선….

 

기사 : 왕자님, 공주님. 이리 오시죠. 거긴 위험합니다. 설마 왕가의 적통을 안고 뛰어내릴 작정은 아니시겠지요.

 

에이레 : …….

 

기사 : 왕자님, 저희를 얌전히 따라오신다면 공주님은 보내드리겠습니다.

 

밀레드 : …….

좋아, 내가 갈 테니 누님은 이대로 보내줘.

 

에이레 : 무슨 소리야, 저놈들이 날 보내줄 리가 없잖아!

 

(그러나 어린 왕자는 성큼성큼 추적자의 앞으로 나아갔고 추격자가 든 단도는 단숨에 어린 왕자의 목을 꿰뚫었다.)

 

에이레 : …밀레드!!! 안돼!!!!!!

흑…, 흐흑…. 밀레드….

심장이 뛰질 않아….

만약에 내가 정말 마녀라면…. 그러면 밀레드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제발….

내가 마녀라면 밀레드를 살릴 힘을 주세요…. 제발….

 

…….

…….

 

…누나….

 

…누나…!!!

 

…….

…….

 

이세트 : …….

헉, 헉….

…방금 그건 뭐였지…?

아까 만났던 꼬맹이…. 그 애의 먼 과거, 그리고 가까운 미래…인가?

…그래, 맞아…. 이 느낌…. 이건 태양신의 계시가 틀림없어….

그런데 왜…, 이미 내가 죽기도 전에 끊겼던 계시가 죽음에서 깨어난 지금에서야 다시 돌아온 거지?

어쩌면 이 푸른 수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 아이와 내가…. 어떤 운명으로 엮여있기라도 한 걸까…?

모르겠어….

…….

…왕국으로부터 버려지고 비참하게 살해당해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 기억을 잃은 왕자.

그리고 이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퍼할 운명을 지닌 아이.

이 아이의 운명은 어딘지 나와 닮았어….

…….

밀레드라고 했지. 곧 이 애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아….

 

……

…….

 

…밀….

 

…밀레드…. 괜찮아….

 

…내가…, 구해줄게….

 

…….

…….

 

이세트 : !!!!!!

 

(식은땀을 흘리던 이세트가 거세게 몸을 일으켰다.)

 

이세트 : …….

…….

나는…. 나는 왜 잠들지 않았지…? 플레이어에게 수정을 건넸으니 난 다시 잠들어야만 할 텐데….

…….

…아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방금 또다시 보인 태양신의 계시….

그건…, 밀레드플레이어 그리고 의 이야기…. 우리 셋에게 주어진 미래의 찰나였어.

본디 태양신께선 무녀 자신에 대한 계시는 보여주지 않으실 텐데….

먼 옛날 아버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킬 때조차 보이지 않던 나 자신의 운명이…. 이제서야 내게 보인 이유가 뭘까.

…….

…!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어. 이건 내게 주어진 진짜 운명이야.

내 희생으로 밀레드를 그리고 플레이어를 구하는 확실하게 정해진 결과.

난 이 결과를 위해 불현듯 깨어나서 두 사람을 만난 거야…. 밀레드를…. 그리고 플레이어를 구하기 위해서….

…….

자, 가자. 지금쯤 누나를 잃고 홀로 슬퍼하고 있을 밀레드를 찾는 거야.

언제 올지 모르는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태양이 인도하는 대로….

 

…….

…….

 

밀레드 : …….

 

이세트 : …….

밀레드. 계속 널 찾고 있었어.

 

밀레드 : 분명히 플레이어는 누나가 잠들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누나가 여기에 있는 거야?

 

이세트 : …잠에 들려고 했는데 새로운 꿈을 꾸었거든. 그 꿈이 아직은 내가 잠들 수 없다는 걸 알려주었어.

 

밀레드 : …?

 

이세트 : 그나저나 이제부턴 뭘 할 거야?

 

밀레드 : …에이레 누나를 되찾을 방법을 찾을 거야.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찾아낼 거야.

그래야만 두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난 내 목숨에 의미가 생길 것 같거든….

 

이세트 : …그렇구나.

…….

있지, 이제부턴 내가 함께 있어줄게.

 

밀레드 : …!

 

이세트 : 그래도 괜찮지? 밀레드?

 

밀레드 : 아…. 응, 물론이지! 헤헤.

…그…. 저기, 있잖아. 나 누나를 이세트라고 불러도 돼?

 

이세트 : 당연히 되지. 그런데 왜?

 

밀레드 : 그게…. 그러니까….

…….

…누나라는 말을 할 때면 자꾸만 주저앉아서 울고 싶어지거든.

 

이세트 : 아….

 

밀레드 : …아, 아냐. 방금 나 너무 어린애 같았지? 못들은 척 해줘!

자, 그럼! 일단 어디부터 가볼까? 이세트.

음…. 엘라한 형 집에서 수상해 보이는 책을 몇 권 챙겨왔었는데….

아, 이거다!

 

밀레드 : 날개를 잃은 신.

저자 로센리엔, 적당히 베껴 쓴 이 엘라한 형.

어디 보자….

그는 자신의 날개를 자르고 광명의 루와 프라가라흐를 낙원에 영원히 잠들게 하였다….

낙원…. 일단은 여기서부터 시작해 볼까?

영원을 떠도는 트레저헌터 밀의 모험!

 

…….

…….

 

이세트 : 마하, 집중해. 중요한 순간이야.

 

마하 : 아이, 알았어.

…….

짜잔. 이제 됐어. 어때, 이세트? 느낌이 좀 달라?

 

이세트 : …글쎄. 아무 차이 없는데.

 

마하 : 어머, 섭섭해라. 기껏 호의를 보여줬는데, 차갑기도 하지.

 

밀레드 : 마하. 이세트에게 뭘 한 거야?

 

마하 : 너희가 영~원히 함께일 수 있도록 일종의 끈을 연결했다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밀레드, 네가 그랬잖아? 이세트가 가끔 비리비리할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젠 걱정할 필요 없어. 네 근처에 붙어 있으면 이세트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을 테니까.

나중에 지겨워서 헤어지고 싶어져도 난 몰라. 후후후후.

 

밀레드 : …….

 

마하 : 하여튼 오지랖이 넓은 것도 탈이라니까. 남 좋은 일 하고 고맙단 인사하나 못 들으니, 참.

…그래도 남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긴 해.

 

이세트 : …….

 

마하 : 그럼 또 이곳저곳 참견하러 가볼까.

또 올 테니까, 둘이 오붓하게 잘 놀고 있으라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마하는 사라졌다.)

 

밀레드 : …괜찮아, 이세트?

 

이세트 : 응, 아무렇지도 않아. 딱히 해가 될 만한 일을 한 것 같지도 않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밀레드 : …그래도 이제 네가 안전하다니 정말 다행이야.

기세 좋게 누나를 되찾겠답시고 길을 떠났지만…. 영원 속에 혼자 남는 건…. 정말 힘들거든.

 

이세트 : …응. 알 것 같아.

 

밀레드 : 하지만! 이젠 괜찮아. 나에겐 이세트 네가 있잖아.

 

이세트 : …….

 

밀레드 :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이세트 : …나야말로.

 

밀레드 : 어쨌든 이제부턴 내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

 

이세트 : 후후, 알았어….

 

밀레드 : 그나저나 어딘가 기운이 탁 풀리는 것 같은데…. 약간 졸린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누나가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기도….

 

이세트 : …!

 

밀레드 : 으….

 

(밀레드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밀레드 : 헤헤, 아까 마하의 마법을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좀 긴장했나 봐. 미안한데 여기서 조금만 쉬었다 갈까?

 

이세트 : …….

…응. 그렇게 하자. 밀레드.

 

…….

…….

 

밀레드 : …….

 

이세트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밀레드 : 그냥….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 이것저것.

나 말이야,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어. 누나를 되찾는 것 외에도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이세트 : 그게 무슨 말이야?

 

밀레드 : 그동안 플레이어를 지켜보며 느꼈어.

플레이어는 나처럼 잊혀져서 영원을 떠도는 처지인데도 스스로 영웅이 되길 선택했어.

아무리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져도 자기가 지키고 싶은 걸 위해 기꺼이 나서지.

나는 고작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경고나 하는 게 전부인데….

 

이세트 : 그렇지 않아, 밀레드.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밀레드 : …….

언젠가 엘라한 형이 그랬어. 고집은 능력이 있을 때 부리는 거다. 네게는 네 친구들을 구할 능력이 없어.

…나는 왜 플레이어만큼 강하지 못한 걸까? 나도 플레이어를…, 모두를 돕고 싶은데….

 

이세트 : …….

 

(이세트는 조용히 밀레드를 쓰다듬어주었다.)

 

…….

…….

 

마하 : 후후, 어때? 참 괜찮은 거래지 않아?

 

밀레드 : …….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고 플레이어에게서 영웅의 검을 빼앗으면 누나를 되살려주겠다는 거야?

 

마하 : 정확해. 게다가 그냥 왕이 아니라니까? 난 널 반신으로 만들어 줄 거거든.

 

밀레드 : …반신….

 

마하 : 죽음과 언덕과 초승달의 신. 기억하지?

 

밀레드 : …….

…절대 잊을 수 없지.

 

마하 : 그 볼품없던 신이 패배하고 난 이후 내가 녀석의 성력을 싹 긁어모아 두었거든?

초승달의 언덕 곳곳에 싹 퍼져있는 것까지 전부 다.

 

(마하의 손 위로 거대한 푸른 수정이 떠올랐다.)

 

마하 : 사실 내가 직접 한 건 아니고 에녹과 그의 장난감들이 다 한 거긴 해.

유능한 우리 에녹, 너 없인 어찌해야 할지.

 

(에녹은 대답 대신 가볍게 묵례했다.)

 

이세트 : …! 이건…!

 

마하 : 아 참, 얘. 너도 이걸로 사고 깨나 쳤었지?

미안하지만 이건 우리의 새로운 왕께 드릴 선물이야. 우리 왕께선 애초부터 이걸 받으실 운명이었으니까.

 

밀레드 : 만일 내가 이 성력을 받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마하 : 약간 따끔하곤 온몸에 힘이 넘칠 거야.

아, 정정할게. 조금 많이 아플 거야. 따끔한 것보단 많이, 그러나 누나를 잃은 고통에는 못 미칠 정도로.

하지만 넌 애초부터 이 신이 점찍어둔 육신이었지. 그러니 퇴락한 신의 힘을 통제하는 건 일도 아닐 거야.

게다가 순식간에 근사한 어른이 되는 건 덤이지.

 

이세트 : 밀레드가…, 어른이 된다고…?

 

마하 : 그래, 그릇이 커야 더 많은 내용물을 담을 수 있잖아?

게다가 풋내기 소년 왕보단 어엿한 어른 왕이 더 많은 걸 할 수 있거든.

 

밀레드 : …….

 

마하 : 자, 어떻게 할래? 선물을 받을래? 말래?

 

밀레드 : …나는….

…….

…좋아, 계약을 하겠어.

 

이세트 : …!!!

밀레드…!!!

 

마하 : 현명한 판단이야. 폐하.

상상해 봐, 작은 여관의 문을 열자 네 누나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삐죽대는 모습을.

뭐 하다 이제 오는 거야, 밀레드! 누나가 몰래 빠져나가지 말라고 했지?

 

이세트 : 무슨 짓이야! 이제 그만해!

 

마하 : 우리 누나 대리께서 질투가 나나 보네. 어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누나 허락 좀 받고 와.

난 착하고 자비로운 신이니까 둘만의 오붓한 대화는 안 엿들을게. 후후후.

 

밀레드 : …….

이세트. 잠깐 얘기 좀 해.

 

이세트 : …….

 

(밀레드는 마하와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이세트를 이끌었다. 그리곤 얼굴을 덮은 로브를 걷었다.)

 

밀레드 : 걱정 마, 이세트. 난 괜찮을 거야.

 

이세트 : …정말로 계약에 응할 생각이야…?

마하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인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계약을 완수해도 약속을 지킬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야.

거기다 플레이어와 맞서 영웅의 검을 빼앗는다니…. 플레이어는 네 소중한 친구잖아….

 

밀레드 : …응. 그래서 오히려 이 계약을 기회로 삼고 싶은 거야.

 

이세트 : 기회라고…?

 

밀레드 : 그동안 나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어린애였어.

하지만 저 성력을 받아들여 반신이 된다면…, 분명히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야.

난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플레이어처럼 말이야.

 

이세트 : …….

 

밀레드 : …지금 마하는 내가 자기 계획의 일부가 되길 바라고 있어.

그건 적어도 마하가 나를 해치진 않을 거라는 의미이기도 해.

만일 저 힘을 받아들였을 때 내가 죽게 될 거였다면 애초에 이런 거래는 제안하지도 않았을 거야.

 

이세트 : 밀레드….

 

밀레드 : 지금 플레이어는 힘겹게 마하와 싸우고 있어. 그리고…. 지금 마하와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은 바로 나야.

그러니 나는…, 영웅의 검을 뺏지 않을 거야.

오히려 성력을 얻고 왕 노릇을 하며 협조하는 척하면서 마하가 플레이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할 거야.

그리고 훗날 플레이어가 언젠가 마하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타났을 때

플레이어를 위해 기꺼이 마하의 발목을 잡고 함께 싸우겠어.

 

이세트 : 그럼 누나는…? 되찾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누나를 되살리지 않는다면 마하와 계약을 하는 의미가 없잖아.

 

밀레드 : …….

누나는…. 누나는 다른 방법으로 찾을 수 있을 거야. 꼭 마하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이세트 : …!!!

그렇다면 너는…. 정말로 플레이어를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거구나.

 

밀레드 : …응. 이제는 남들이 희생하는 걸 지켜만 보고 있는 게 죽도록 싫어졌거든.

 

이세트 : 하지만 밀레드. 만일 일이 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네가 혹여라도 마하의 편에 서면…? 플레이어와 맞서게 된다면…?

 

밀레드 : …….

내 곁엔 네가 있잖아. 이세트. 내가 엇나갈 것 같으면 그땐 네가 날 따끔하게 혼내줘.

 

이세트 : …….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마음 편한 소릴 하면 어쩌니.

 

밀레드 : 농담 아닌데…. 난 네 말이면 무엇이든 듣잖아.

그리고…, 플레이어. 정말로 일이 잘못 돌아간다면 플레이어가 나를 막아줄 거야. 플레이어는 영웅이니까.

 

이세트 : 밀레드….

 

밀레드 : 자, 그럼. 나 다녀올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날 믿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밀레드는 이세트의 손 마디를 빠져나가 마하에게로 향했다.)

 

마하 : 대화가 길어지는 걸 보니 누나 허락이 떨어졌나 보네.

 

밀레드 : 그래. 이제 준비됐어.

 

마하 : 그렇다면….

에녹. 지시를 이행해.

 

에녹 : 예, 여신님.

따라오시지요, 폐하.

 

밀레드 : …….

 

이세트 : 밀레드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마하 : 어디서 어떻게 실험할지는 집도하는 사람 마음 아니야? 사사건건 경계하지 좀 마.

…어린애 옆에 기생해서 사는 영혼 주제에.

 

이세트 : …….

 

(잠시 뒤….)

(엄청난 빛과 함께 끔찍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밀레드 : …으윽….

 

마하 : 어때? 반쪽짜리 신이 된 기분이. 상상도 못할 만큼 좋지 않아?

아마 내가 날개를 되찾았을 때만큼 황홀했을 거야. 아하하하.

 

이세트 : 밀레드…!!!!!!

 

밀레드 : 헉…, 헉….

…….

…누나….

 

(푸른 혈관이 돋아난 채 비틀거리던 밀레드는 걸음을 떼려다 그대로 바닥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세트 : …아, 안돼….

밀레드…! 밀레드…!!!

 

밀레드 : …….

 

마하 : 귀여운 티가 싹 사라진 게 아쉽지만 인간의 형상이 남아있는 게 어디야.

이 정도로 성력을 통제하는 걸 보면 역시 신이 점찍은 육체는 다르다니까….

…네 고통이 곧 누나의 행복이야. 그러니 꾹 참고 견디도록 해. 어른은 다 그런 거니까.

 

(마하는 쓰러져 있는 밀레드에게 다가가 속삭이곤 즐거운 듯 웃었다.)

 

이세트 : 넌…. 겨우 어린아이에 불과한 밀레드를….

이 애가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시기를 빼앗아버렸어….

밀레드가 그나마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을 앗아가 버렸다고.

 

마하 : 저런, 지금 누굴 탓하는 거야? 그 애의 행복은 진작부터 없었는데.

애먼 분풀이로 낭비할 시간이 있으면 붕괴하기 직전인 우리의 왕이나 잘 돌봐줘.

에녹이랑 내가 구석구석 전부 건드려놨거든. 육체와 정신 모두 꼼꼼하게.

 

이세트 : …밀레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전부 다 말해.

 

마하 : 음. 에녹이 몸뚱이에 성력을 주입하는 동안 나는 왕의 정신을 조물거렸지.

처음엔 내 광신도로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이 꼬맹이에겐 신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없을뿐더러

정신이 꽤 견고하더라? 다 깨부수고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단 아주 살짝만 비틀어주는 게 더 낫겠다 싶었지.

그런데 마음을 잘 들여다보니…. 탄탄한 정신 너머에 이 애가 꾹꾹 억눌러둔 감정이 보이더군.

바로 깊은 절망이었어.

…누나가 죽었다. 모두가 날 잊었다. 플레이어에겐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다. 이젠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내용이 마음에 쏙 들길래…. 내 암시 마법으로 커다랗게 꽃을 피워줬지.

 

이세트 : …!!!

 

마하 : 이제 왕이 눈을 뜨면 그의 안에서 억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일시에 날뛸 거야.

꼬맹이가 생각해둔 하찮은 계획이 뭐였든 간에 내가 피운 꽃들에 의해 철저히 오염되겠지.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 속에서…, 우리의 왕은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미쳐가는 밀레드가 여전히 정의감 넘치는 꼬맹이로 남을 수 있을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보통 판단이 흐려져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던데….

우리 왕의 경과가 참 기대되네. 그렇지?

 

이세트 : 아, 안돼….

 

마하 : 참, 예전에 내가 건 마법 기억나? 너희 둘을 끈으로 연결했다느니 한 거 말이야.

사실은 그때 아무것도 안 했어. 어차피 넌 에린에 속한 영혼인데 뭐 하러 그런 걸 하겠어?

대신 그때 내가 꼬맹이에게 성력을 주입하는 실험을 조금 해봤거든?

물론 누나가 너무 보고 싶다~하는 암시 마법도 살짝 걸어봤고.

그런데 참 놀랍게도 네가 옆에 찰싹 붙어있으니까 꼬맹이가 금방 제정신을 찾더라고.

즉, 왕이 그나마 늦게 무너질 수 있도록 붙들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라는 거지.

어때, 이세트? 좀 희망이 생기지 않아?

 

이세트 : …마하…. 너….

 

마하 : 잘 관리해 주지 않으면 꼬맹이는 그 즉시 미쳐버릴 거야.

계획도 실행하기 전에 왕이 망가지면 나도 곤란하거든?

그러니 네가 온실 속 화초처럼 옆에서 애지중지하며 끔찍이 아껴줘. 그러라고 널 살려두는 거니까.

 

이세트 : …….

이런 짓을 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거야.

 

마하 : …라고 말라비틀어진 시체가 말했답니다.

아이고, 무서워라.

이세트.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을 쏟아놓는 이유가 뭐겠어?

바로 네가 아무런 현상도 일으킬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어디 왕이 깨어난 뒤 매일같이 눈물로 호소해 봐. 왕의 마음은 꿈쩍도 안 할걸?

꼬맹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네 주제를 알라고.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마하는 쓰러진 밀레드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린 뒤 에녹과 함께 사라졌다.)

 

이세트 : …….

…결국 어른이 되었구나. 내가 보았던 너의 미래 그대로….

…내가 어른이 다 됐다고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

이제 네가 눈을 뜨고 나면 플레이어를 위해 자신을 바치려던 용기는 절망에 먹히고….

결국은 자기 자신과 많은 이들을 상처 입히게 되겠지.

…미안해. 밀레드. 네가 마하와 계약을 맺도록 두어서. 네가 이 모든 고통을 겪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너무나 두려워….

네가 고통받는 동안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말없이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워….

하지만…. 난 허락된 때가 오길 기다려야만 해.

만일 내가 감정에 휩쓸려 널 붙잡는다면 너와 플레이어를 구할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몰라….

 

밀레드 : …….

누나…. 에이레 누나….

…왜…, 왜 날 두고 가버린 거야….

…….

…너무 아파….

…….

…이세트…. …도와줘….

 

(이세트는 덜덜 떨리고 있는, 이제는 커다래진 밀레드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이세트 : …….

…걱정 마, 밀레드. 난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이 이야기의 끝까지.

언제까지나….

 

 

(스토리 밀레드와 이세트 완료)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