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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태양 스토리에서 이어짐)

 

 

# 로체스트 로나운 성채

 

브린 : …….

…! 왕의 얼굴이…. 아니, 온몸이….

…그의 내면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용케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모양입니다만….

솔직히 지금의 저 자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입니다.

…조심하십시오. 플레이어. 저 들끓는 용광로 같은 신체가 곧 붕괴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밀레드.]

 

밀레드 : …왔군, 플레이어. 대성당으로 가는 길이었겠지?

미안하지만 아직은 보내줄 수 없어. 너와 나눠야 할 얘기가 좀 남아있거든.

…윽….

 

(밀레드가 괴로운 듯 자신의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밀레드 : …….

그런 서글픈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 몰골이 어떻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지금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온전하거든.

 

[…죽음의 신의 힘?]

 

밀레드 : 그래, 마하가 내게 주입한 이 힘은…. 크로우 크루아흐의 성력이라고 하더군.

내게서 에이레 누나를 앗아간 역겨운 힘….

하지만 괜찮아. 이제 이 힘은 내 통제하에 있어. 퇴락한 신의 힘이니 일개 인간인 나도 마음껏 다룰 수 있다던가….

그래, 마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반신이 된 거야. …결국 내게 주어졌던 운명대로 말이지.

…….

네가 날 영원 속에 버려둔 동안 마하는 줄곧 내 곁을 맴돌았어.

그리곤 어느 날 날개를 되찾아온 그녀가 때가 되었다는 듯 말했지.

새로운 왕이 되고 영웅의 검을 빼앗으면 에이레 누나를 되돌려주겠다고.

그리고 난…, 그녀와 계약을 맺었지. 내 이름과 몸을 빌려주는 대가로 힘을 얻었어….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플레이어. 나는 널 해치고 싶지 않아.

오히려 그 반대로 너와 뜻을 함께하고 싶어. 함께 힘을 합쳐 마하 타도에 앞장서고 싶어.

 

[…!]

 

밀레드 : 왜 놀라는 거지? 처음부터 난 마하를 신뢰하지 않았어. 이해관계가 맞아 행동을 같이 했을 뿐….

그런데도 내가 계약을 맺고 이 힘을 받아들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바로 영웅인 너처럼 강해지기 위해서야. 플레이어.

…그동안 난 무력한 어린애에 불과했어.

한동안 누나를 되찾을 방법을 애타게 찾았지만 결국 깨달은 건 내게 아무런 힘도 없다는 거였어.

네 곁에 나란히 서서 함께하고 싶어도 그럴 힘도 명분도 없었지.

그래서 난 네가 나를 찾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어. 이미 네 주변엔 강하고 대단한 자들이 많으니까.

모든 이에게서 잊혀진 채 영원 속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신세.

허나 난 운명의 들러리에 불과하니 이 정도 슬픔쯤은 달게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네 친구, 영웅의 친구잖아.

네가 힘겹게 영웅의 길을 걷고 있는데 혼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 어떻게든 제 역할을, 옳은 일을 해야만 했어.

그리고 때마침 마하가 계약을 제안해오자…. 내겐 좋은 계획이 떠올랐어.

그래, 이 힘을 받아들이고 운명의 돌을 되찾아 다시 한번 운명에 맞서자.

마하에 협조하는 척하며 어떻게든 그녀의 발목을 붙잡자. 때가 오면 플레이어가 그녀를 무너트릴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기꺼이 마하 일당에게 내 몸을 내어주었어.

어차피 내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으니 결정을 내리는 건 아주 쉬웠지. 물론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견디는 것도 말이야….

지금의 나를 봐, 플레이어. 난 이제 다 큰 성인이야. 게다가 운명의 주역으로 설 수 있는 힘까지 얻었어.

영웅 그리고 반신화한 왕. 우리가 함께라면 마하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들까지도 타도할 수 있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운명을 바로 세우고 소중한 이들을 지킬 수 있다고. 더는 운명에게 놀아나지 않아도 되는 거야….

…자. 그러니 나와 넌 적대할 필요가 없어. 나는 너의 우군이야. 플레이어.

네 말 한마디면 난 언제든 너와 함께 싸울 거야. 왕국의 전군도 네 편에 설 거야.

넌 그저 나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돼.

…단 한 번, 내가 마하와의 계약을 완수하는 걸 도와준다면.

 

[…….]

 

밀레드 : …….

…기억해? 언젠가 내가 이세트에게 하반의 데드마스크를 가져다줬던 날.

그와의 재회에 이세트가 무척 기뻐했었다고 했지.

그리고 네가 영웅의 검을 택한 이후 마하에게 들었어.

네가 네 잃어버린 용병단 친구들을 되살리기 위해 얼마나 절박하게 싸웠는지….

…내가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야. 잃어버린 누나를 다시 되돌려 받는 것. 그것조차 들러리의 욕심이라면….

하다못해 잠시라도 만나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 그뿐이야.

그러니…. 단 한 번만 영웅의 검을 포기하고 마하와의 계약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줘.

누나만 돌려받고 나면 영원히 네 편에 설 것을 약속할게.

더는 운명에게 놀아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로 세워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거야.

다시 에이레 누나, 운명의 돌을 되찾고…. 함께 운명에 대항하자. 플레이어. 부탁이야…. 나의 친구….

 

[…….]

 

밀레드 : …….

왜 주저하는 거야…? 비록 나는 모든 걸 잃었지만….

그래도 너만은 고통스럽지 않기를, 네가 언제나 행복하기만을 바랐어.

그걸 위해서라면 난 나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수도 있었다고.

…그런데 넌, 나를 위해 조금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거지?

…….

이제 나는…. 너라는 희망마저 잃게 되었구나.

…….

…유감이야. 서로 이야기가 통했으면 했는데…. 진심으로….

…….

이 힘을 너에게 겨누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어.

플레이어. 네 선택에 후회가 없길 바라지.

 

(죽음의 변증법 전투 정보 받음)

 

 

# '죽음의 변증법' 전투 진행 중

 

 

# '죽음의 변증법' 전투 완수 후

 

밀레드 : 이제 그만 해. 밀레드.

그 힘이 널 조종하게 내버려 두지 마.

 

밀레드 : 비켜, 이세트!

더는 누구도 내 앞을 막지 못해!

 

이세트 : 날 공격하지 않을 줄 알았어.

 

밀레드 : 왜…! 왜 너마저 날 방해하는 거야.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걸 잃었는데….

 

이세트 : 밀레드. 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어.

너는 누나로부터 새로운 삶을…. 새로운 힘을…. 옳은 선택을 할 기회를 얻은 거야.

 

밀레드 : 이세트….

 

이세트 : 이제 거기서 나와.

내가 구해줄게.

 

…….

….

 

밀레드 : 하아…, 하아….

이, 이세트….

 

이세트 : 쉿.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밀레드 : 이세트….

 

이세트 : 마하는 처음부터 이러길 바랐던 거야. 네가 깊은 절망에 잡아먹혀 플레이어와 대적하길 바랐던 거야….

 

밀레드 : 마하는 내게…, 계약을….

누나를….

 

이세트 : 아니야, 밀레드. 기억해 내야 해.

처음부터 넌 이미 알고 있었어. 누나가 마하에 의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밀레드 : !

 

이세트 : 지금 너와 플레이어의 싸움 그리고 네가 느끼는 분노와 절망.

그건 마하와 그녀의 수족이 네 몸과 마음을 헤집어 오염시킨 결과일 뿐. 절대로 네 본심이 아니야….

 

밀레드 : …….

 

이세트 : 최근의 난 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한 건 아닐지 못내 두려웠어.

그러나 방금 너와 플레이어의 싸움으로 확실해졌어. 네 안에 여전히 내가 아는 밀레드가 있다는 사실이.

방금 날 공격하지 않았듯 성력에 먹혀가는 와중에도 넌 끝끝내 플레이어를 보호하려 했지.

이계의 불꽃 속에 알 수 없는 빈틈을 만들어서….

아무리 신의 성력을 주입하고 마법으로 네 마음을 헤집어도 마하는 널 완전히 장악할 수 없었던 거야.

 

밀레드 : 윽….

 

이세트 : 자, 어서 눈을 떠.

그리고 돌아와.

내가 네 옆에 있어.

 

(이세트의 몸에서 태양을 닮은 따뜻한 빛이 흐르자, 밀레드가 머금은 푸른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밀레드 : …….

이…세트…. 나는….

이건….

…아파, 혼란스러워….

 

이세트 : 이제야 돌아왔구나. 밀레드….

…정말 기뻐. 마지막에라도 만날 수 있어서.

 

밀레드 : 돌아…와…? 아, 아니….

마지막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세트…!

 

이세트 :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마침내 찾아왔다는 의미야.

 

밀레드 : …기다리던 때…?

 

이세트 : 잘 들어. 지금부터 내가 네 안에 있는 부정한 힘을 모두 태워버릴 거야.

존재해선 안 되는 힘들이…, 너무 오래 이 세상에 머물고 있었어.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해. 여기 나를 비롯해서….

 

밀레드 : …그게 무슨….

…! 설마…!

 

이세트 : …다정한 밀레드.

그동안 넌 내게 수많은 걸 주었어. 날 위해 친절을 베풀고 이미 죽은 나를 위해 용기를 내고 위험을 무릅써주었지.

그래서 난 덧없던 삶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었어.

게다가 넌 몰랐겠지만…. 너는 내게 태양신의 계시를 돌려주었어.

이미 왕국이 멸망하기도 전에 끊겼던 연결을 말이야….

 

밀레드 : 계시…라고…?! 그게 무슨….

 

이세트 : 죽음에서 되살아났던 내가 밀레드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본 환영은….

쫓겨난 왕자이자 죽음에서 다시 한번 되살아났던 너의 먼 과거가까운 미래.

나와 너무도 닮은 운명이기에 네게 강하게 이끌렸어. 날 곧잘 따르는 너와 함께 있는 게 즐거웠지.

그러나 너와 플레이어가 일깨워주었듯 난 이미 오래전 죽은 자였어.

죽은 자는 산 자의 이야기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지. 그래서 난 네 행복만을 빌며 다시 깊은 잠에 들고자 했어.

그런데 잠에 들려는 내게 불현듯 두 번째 환영이 나타났어. 이번엔 너의 가까운 미래가 보였지.

어째서인지 어른이 된 네가 반인반수인 모습을 한 채 플레이어와 대적하며 울부짖고….

그 사이를 가로막은 나 이세트가 너를 구하는 확실하고 분명한 결과.

…난생처음으로 내가 등장하는 계시를 보자 나는 확신했어.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끝난 내가 깨어난 이유….

그건 바로 반드시 찾아올 결과 속에서 딱 한 번 허락된 순간 네 이야기에 개입하기 위함이었던 거야.

시작은 같았으되 끝은 같지 않기를….

그게 바로 나의 운명. 내가 너와 함께 여행한 이유야. 밀레드.

 

밀레드 : …!!!

날 위해 널 희생하는 게 되살아난 이유라고? 이게 네 운명이라고…?

말도 안 돼…. 이세트. 제발…. 제발 에이레 누나처럼 말하지 마…. 부탁이야….

아무도 없던 내 곁에 남아준 유일한 사람은 너뿐이었어. …너마저 떠나면 나는….

 

(그러나 이세트는 아무런 대답 없이 더욱 강하게 밀레드를 끌어안았다.)

 

밀레드 : 이세트…!!!

안돼…! 제발…!!!

 

이세트 : 밀레드,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

어린 네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게 두어서 정말 미안해.

 

밀레드 : …이세트!!!!!

 

(강렬한 빛과 함께…. 변화가 찾아왔다.)

 

밀레드 : …….

이세트….

…….

…….

 

(마치 허공을 끌어안으려는 듯 밀레드는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잿가루는 손가락 마디를 빠져나가 허공으로 조용히 휘날렸다.)

 

밀레드 : …….

에이레 누나….

이세트….

…….

…미안해. 정말 미안해….

…….

 

 

# 로체스트 로나운 성채

 

브린 : …….

 

리엘 : …….

 

스피노스 : …….

…….

 

브린 :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보시다시피 이곳 상황은 이미….

 

스피노스 : …방금 그건…. 이세트 공주…?

 

리엘 : …!

 

브린 : 갑자기 무슨 말을….

 

리엘 : 쉿. 잠시 조용히 있어, 제자야. 지금 이곳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사려 깊은 침묵이란다.

 

브린 : …….

 

스피노스 : …….

…공주….

이세트 공주님…. …왜….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당신은 왜 지금 여기서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신 겁니까…. 대체 왜….

…….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아아….

 

(눈두덩이에서 솟아난 물기가 칭칭 감긴 붕대 위로 스며 올라오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린 스피노스는 자신을 벌하듯 수없이 주먹을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토리 죽음의 변증법 완료)

(끝은 같지 않기를 스토리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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